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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한국 최초의 사설 사진 전문 갤러리가 있었다. 이름하여 <포토갤러리051>.

1997년부터 2000년까지 4년 동안 부산의 사진가는 물론 한국의 사진가들에게 전시 장소를 제공하며 부산 사진의 웅비를 꿈꾸었던 공간이다.


지역 사진의 글로벌화와 세계 진출의 기회를 만들려고 열었던 <포토갤러리051>은 IMF의 거센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된 후 22년 만의 귀환이다. 포부는 여전히 부산 사진의 글로벌화와 지역 작가의 세계 진출의 교두보를 꿈꾸며, 이름만 <갤러리051>로 바꾸어 과거의 꿈과 미래의 현실이 만나는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여기 갤러리051 개관전에 부산이 낳은 여성 사진가 송영희의 <여행자의 기억법>이 첫 번째로 전시된다.


『송영희의 ‘여행자의 기억법’은 장소의 기억법이 아니라 존재의 기억법이다.

장소의 다양성은 곧 시간적 배치를 의미한다.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거나 머무를 때는 장소와 더불어 시간적 배열, 즉 시간적 순서가 생긴다. 이 시간적 순서가 바로 인간의 기억이다. 이 기억이 바로 그 자신이 되는 것이다. 기억으로서 존재인 인간.


송영희는 우리에게 기억이 사라진다면, 다시 말해 순차적으로 기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재 가능한가를 묻는다. 송영희의 사진이 현실 세계를 담고 있지만 대단히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보이는 것은 이런 철학적 배경 때문이다.』


대개 갤러리가 오픈하면 부산 작가가 아닌 외부의 작가를 불러 전시를 하고 갤러리의 위상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갤러리051은 그 이념에 따라 지역 작가의 글로벌화를 위해 애초부터 부산의 미래 역량을 가진 작가를 섭외해서 전시를 연다.


송영희의 사진은 위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상의 기계적 이미지 고정이 아닌 철학적이고 정서적이며 존재의 의미를 파헤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영상적으로도 탁월하다. 이 두 세계를 동시에 겸비하기란 쉽지 않다. 부산이라는 지역에도 얼마든지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음 할 수 있는 작가들이 존재한다는 증거인 셈이다.


부산 사진계의 문제는 스스로를 성찰하지 않는데 있다. 자신의 위치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르는데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좌표를 상실한 개인이나 집단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진로를 잡을 수 있겠는가?


갤러리051 개관전의 송영희 작품 <여행자의 기억법>을 통해 부산의 사진계의 현실은 어떠하며 사진사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담론이 형성될 것을 기대한다.


이제는 폐쇄적이고 우물안 개구리 식의 자기반성 없는 사진을 넘어 세계로 미래로 새로운 미학적 형식과 내용을 표출할 때이다. 이 미흡한 시작을 갤러리051의 개관전과 송영희 작가의 <여행자의 기억법>을 통해 창대한 미래로 나아갈 교두보를 우리 모두 마련하여야 한다.


김홍희(사진가, 갤러리051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