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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반역과 이미지의 귀환”전에 대해

김경수의 고래와 그 외 이미지는 AI 컴퓨터를 활용해 만든 것이다.
사진가의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다. 

김경수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거니와 명실 작업만으로 자기 상상력을
AI로 이미지화 한다. 여기서 명실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필름 시대의
확대기로 인화지에 노광을 하던 역할을 컴퓨터가 온전히 대신하는 것을 말한다.

20세기 초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인화지 위에 가위를 놓고 노광을 했던 것도 카메라 없이 암실 작업으로만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이 점에서는 바우하우스와 김경수의 작업 과정이 같다.

그러나 바우하우스의 인화지에서는 그 위에 놓인 물건만 복제되는 반면 김경수의 인화지에 드러난 이미지는 김경수 자신의 상상력이다. 바로 여기에서 바우하우스와 김경수의 방법이 확연히 나뉜다.

김경수의 이미지는 사진이 아니다. 사진이란 본래 카메라와 암실, 또는 명실 작업을 통해 피사체가 인화지 위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경수의 이미지는 사진에 대한 일종의 반역이다. 그리고 그 반역은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시대의 첨단에 서 있다.
그는 AI Image Creator라는 신종 이미지를 창작해내는 작가군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사진의 정체성에 질문을 던진다.

김경수는 사진가에서 AI Image Creator로 영역을 확장했다.
이제 우리는 그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새로운 이름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김홍희의 고비사막 사진의 제목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이다. 
‘ 인식하는 주체로서 인식의 틀인 패러다임이 없다면 인간은 사물을
어떤 식으로 인식할까? ’김홍희는 오래도록 이 물음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 물음의 답은 작품 제목에 담겨 있다. 어떤 패러다임 없이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인 것은 사회와 환경으로부터 전이된 패러다임―자신이 창조하거나 만든 것이 아닌 것―을 통해 세상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라는 제목은 인간이 유전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이미 규정된 패러다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닫게 된 자성이다. 인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체념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는 규정되고 고정된 패러다임 속의 이미지, 다시 말해 너무나 인간적인 이미지로 귀환되고 마는 것이다.